‘재야사학’의 명칭에 대한 一考

고대사와 관련된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가 ‘재야’이다.

이렇듯 ‘재야사학’은 ‘강단사학’과 함께 전공을 불문하고 자주 쓰이는 단어이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정의는 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하여,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각자 입맛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 정리할 필요를 느껴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1. ‘재야사학’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일까 ...?
 ‘재야사학’에 대한 정의는 없다. 하지만, ‘재야사학’은 ‘재야’ + ‘사학’이므로, 각자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 재야(국립국어원 참조):
초야에 파묻혀 있다는 뜻으로, 공직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민간에 있음을 이르는 말. (예: 재야 학자)
일정한 정치 세력이 제도적 정치 조직에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에 있음. (예: 재야 단체)
☞사학:(= 역사학)
역사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언뜻 보기에 ‘재야’는 ①번의 정의에 해당되는 듯하다. 하지만, ‘초야에 파묻혀 있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에 대응하는 의미인 ‘강단사학’의 의미를 찾아본다.
☞강단:
강연이나 강의, 설교 따위를 하는 사람이 올라서도록 약간 높게 만든 자리.

하지만, ‘재야사학’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강연이나 강의를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강단’은 ‘대학강단’을 말한다. ‘재야’가 ‘강단’에 대응하는 의미로 사용된다면, 이는 학계의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대학 강단에 서지 못하는 ②번의 의미라 할 수 있
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에도 문제가 있다. 몇몇 대학 강단에 서는 이들도 ‘재야’로 불리우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강단에 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재야’로 부르는 것은 불공정하다.

2. 실제로 쓰이는 ‘재야’의 의미는 ...?

결국 ‘재야’라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 편한대로 가져다 뜻을 변형하여 쓸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아무도 ‘재야’를 정의하지 않았고, 중구난방으로 사용되는 단어를 정의할 수도 없다.
특히, 사람들은 ‘소위’라는 말을 그 앞에 붙이기를 좋아한다. ‘소위 재야사학’, ‘소위 강단사학’의 의미는, 어디에선가 쓰이고는 있지만, 그러한 단어를 자신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활동하는 사학자들은 ‘소위 재야사학자’들을 아마츄어라고 여긴다. ‘재야’는 ‘아마츄어’를 포장하기 위한 단어라는 것이다. 반대로, 역사학이 전공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소위 강단사학자’들을 구습을 버리지 못하는 고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곡학아세를 서슴지 않는’ 무리로 매도되기도 한다. 여기에서의 ‘강단’은 과감한 학설을 내놓지 못하는 학자들은 비꼬는 말이 된다.

3. ‘재야사학’이라는 말은 대체 언제 생겨난 것일까 ...?

그럼에도 각종 서적이나 보도에는 재야사학과 강단사학의 두 가지 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분류라기 보다는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며, 기존의 상고사를 부정하고 검증되지 않은 사서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198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그 여파로 역사교과서 저술에 참여했던 역사학자들이 국가기관에 불려다니는 고초를 겪은 전후로, 두 진영이 형성되었다.

‘재야’와 ‘강단’의 단어가 생겨나 일반에 퍼진 것은 아마도 이 때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재야사학’이라는 단어는 1963년 이전에는 쓰이지 않았고, 조선일보의 1985년 기사에서도 이상시씨를 ‘재야사학자’가 아닌, ‘단군관계사료수집가’로 소개하였다는 것이다.
1990년 이후의 기사를 참조하면, 1990년에는 ‘재야사학’에 대한 기사는 없고, 1991년 3월에 안호상씨가 처음으로 ‘재야사학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후로 여기저기서 ‘재야사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양측은 그 앞에 ‘소위’ 자를 붙이면서 서로 그 원조임을 부인하였으나, 소위 ‘재야’ 측인 안호상씨가 그 시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단사학’이란 단어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
동일한 절차로 검색해 보면, ‘강단사학’은 1993년 8월에 고준환씨의 책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결국, 두 단어 모두 소위 ‘재야’가 그 근원지인 것이다.

4. ‘강단’과 ‘재야’의 구분은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

‘재야사학’은 80년대에 형성된, 기존의 역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 ‘강단사학’은 이에 대응하는 역사학자들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두 단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쉽지 않다. 또한, 모든 사학자들이 ‘재야’와 ‘강단’으로분류되는 것도 아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지 10년이 넘었다. 아직까지 10년 전과 같은 편가름이 계속되고 있다면 이는 근본적인 속성의 문제이며, 소위 강단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달라져 있는 것인가 ...? 당시에는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왜곡된 고대사를 다루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동조자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신동아 9월호’ 같은 내용에 동의하지만은 않는다.

현재는 역사학자가 아님에도 당시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며, 체계적으로 역사를 연구한 부류 중에도 당시의 ‘재야’의 의견에 일부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10년의 시간차를 두고 여전히 ‘강단’과 ‘재야’로 경향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래저래 ‘강단’은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지금도 두 단어는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진위의 의심이 있는 사료들(예를 들면, 각종 구전 민요나 전승들)을 부분적으로 채택할 수 있으므로, 이것 만으로 (개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쪽 부류에 포함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 사료의 선택은 연구자의 재량이다. 또한, 사람을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차별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과연 ‘재야’와 ‘강단’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해야 할까 ...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야’가 아니면서도 ‘재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모순이며, 심각한 사실의 왜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대륙사관 (덤)
‘소위’가 잘 붙는 또 다른 단어로 ‘대륙사관’이 있다. 이는 대륙 지향적인 사관으로, 내용을 보면 반도사관이나 같은데 단지 이름이 다를 뿐이다. 명칭은 ‘사관(史觀)’이면서, 역사 자체를 가정하여 바꾸기도 하는데, 이런 것은 ‘사관’이라기 보다는 ‘주의()’라 해야 옳다.

반도사관은 대륙을 중심으로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의미가 되고, 바다를 중심으로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해양사관’에 대응하는 의미가 된다. 그런 면에서, 진정으로 반도사관을 극복하려 한 것은 해양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반도라는 위치는 대륙과 해양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이니까 ... 이는 학창시절에 익히 들어온 말이고, 일견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바다는 그 시초부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바다와 싸우면서 발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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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 2007/10/19 15:18 | 고대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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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10/20 20:36
사실 재야사학은 국수주의사학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곰돌이 at 2007/10/20 23:16
초록불 님 /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누가 처음으로 저 단어를 사용했는지가 궁금해서 적어본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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